‘층간소음’과 ‘경계의 모호성’
‘층간소음’과 ‘경계의 모호성’
  • 경대일보
  • 승인 2019.10.07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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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곤 경북과학대 교수‧시인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의 공통된 걱정거리 중의 하나는‘층간소음’이라 한다. 요즘의 거주추세가 거의 대부분 아파트이기 때문에 이 문제는 어느 개인의 사생활이 아니라 이제는 사회문제로 보는 시각이 많다. 과거 어느 순간부터 최근에 이르기 까지 아파트의 ‘층간소음’ 문제는 이웃 간의 단순한 다툼에서부터 살인을 부르는 엄청난 재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이 문제를 더 이상 미루어서는 안 될 숙제라는 게 대다수의 의견이고 덩달아 많은 개선방안이 나오고는 있지만 공동생활이 가지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이다 보니 그 해결이 만병통치약 같이 마땅하지 않은 현실도 또한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파트가 주거공간으로 필수불가결한 위치를 확고히 하고 있는데다, 생활수준의 향상과 더불어 자녀들을 기죽이지 않고 활발히 키우고자 하는 분위기와 ‘반려동물’기르는 가정이 늘어나는 추세이고 보면, 소음 없이 생활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고 그 소음을 그냥 참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생활하라고 권하기에도 설득력이 없어 보이는 게 현실이기도 하다.
  어쨌든 층간소음은 우리사회 곳곳에서 여러 가지 문제를 낳고 있는데, 최근 몇 년 새만 하더라도 회자되고 있는 분쟁들이 수두룩하다. 오랜만에 부모 집을 찾은 형제가 아래층 이웃에게 층간소음을 일으켰다는 이유로 살해당했는가 하면, 고양이 울음소리가 시끄럽다고 항의하는 이웃주민을 폭행한 사건도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인터넷에서는 이 문제로 괴로워하는 사람의 글이 화면을 도배하고 있는가 하면, 주요 방송에서는 이 문제를 다투어 방영하는 등, 식을 줄 모르는 이웃 간의 분쟁 한 가운데에 바로 이 층간소음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닌 실정이다.
  어떻게 해서든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것이 모든 이들의 바라는 마음인데, 현실은 그 해결을 위한 방법이 마땅하지 않다는데 대체적인 의견의 일치를 보인다. 그런데 이 문제를 다루었던 한 법원이 층간소음의 항의에 관한 허용범위를 나름대로 제시하여 화제가 된 적도 있었다. 그러니까 사람의 마음에 들어있는 감정적인 문제를 법이라는 잣대로 다루어보자는 취지와 함께 그 구체적인 기준을 ‘범위’로 표현하여 제시한 것이니 세간의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파트 위층에 사는 어떤 사람이 아래층 주민을 상대로 낸 ‘접근금지가처분신청’을 다루면서 제시했던 그때의 기준이라는 것은, 층간소음에 항의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행동으로 허용되는 범위와 그렇지 않은 범위를 구분한 것이었다.
  그 내용에 따르면, 소음에 항의하기 위해 그 집안에 들어가서는 안 되고, 초인종을 누르거나 현관문을 두드려서도 안 된다고 하였다. 그렇다고 소음에 항의하는 전화 통화나 문자메시지 발송, 아래층에서의 위층 소음에 대한 천장 두드리기 등은 막을 수 없다고 하면서 허용하였다. 또 층간소음 분쟁이 생겼을 경우, 직접 찾아가 만나거나 항의하면 폭행 등의 과격한 행동이 유발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행위는 명문화를 통해 금지할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 이는 위층 사람의 소음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며, 어느 정도의 항의는 용인한다고도 하였다. 전화를 이용한 항의, 문자 메시지를 통한 소음불평, 천장을 두드려 상대방에게 하는 항의표시 등을 허용한 것이 바로 그러하다는 설명이다.
  이런 내용을 접한 많은 사람들은, 그‘경계’가 너무 ‘모호’하다는 것이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층간소음에 항의하는 방법의 허용과 불허 사이의 ‘경계’가 지나치게 자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분쟁 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전무하다는 것이 주요 골자였다. 예컨대, 아래층에서 위층의 소음에 항의하는‘천장 두드리기’는 알맞게 해야지 그렇지 않은 것은 안 된다는 식의 범위 제시는, 문제의 해결을 오히려 더디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물론, 층간소음 문제는 오래 전부터 단순한 이웃 간의 불화에서 벗어나 사회 전반의 문제로 자리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마땅한 해결책을 강구하지 못했다는 것은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방증하기도 하지만, 만병통치적인 해결방법 또한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쨌든 이런 ‘경계’의 모호성은 극복해야 할 대상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서둘러 보완해야 한다. 지금이 바로 그런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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